Q. 먼저 1유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오래된 미래 공간 연구소 - 로칼 퓨처스’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건축가이자 로칼 퓨처스 대표 최성욱입니다. 로칼 퓨처스는 오래된 도시를 활성화시키는데 진심인 ‘소셜 디벨로퍼 아키텍트 그룹’이에요. ‘나와 우리는 내일,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도시-사회적 이슈의 균형 잡힌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전 지구적 역량(자원)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제로 작동시키는 민간 기업이죠. 크고 작은 공간의 가치와 역할을 찾고, 살고 싶은 현실 도시와 건축 공간을 합리적으로 디자인하여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Q. 어떻게 로칼 퓨처스를 설립하게 되셨나요? 도시 재생과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저는 2013년 전까지는 주로 한옥을 설계하는 곳에서 일을 했었고, 사촌이랑 북촌에서 살았는데요. 그 때 제가 살았던 한옥이 한 80년 정도 된 오래된 한옥이었어요. 들어가서 여름을 날 때는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10월쯤 되니까 점점 추워지기 시작해서 겨울이 너무 힘든 거예요. 방풍 비닐을 치고 에어캡을 붙여가며 추위와 싸우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때 생각이 들었어요. ‘나야 젊으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이 분들은 평생 이렇게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고생하며 사셨겠구나’ 하고요. 당시 그 지역에 재개발 이슈가 있었는데, 저는 전통적인 가치가 있는 한옥을 없애버리는 건 너무 미개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쪽이었고요. 그런데 그 일을 겪고 나니 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편한 것을 마냥 참고 살라고 하는 건 폭력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발전시키면서도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겠다’ 는 생각에서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Q. 로칼 퓨처스 설립 이전 해외 경험도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그간의 족적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도시 재생을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경험해보고 싶어서 네덜란드로 갔어요. 관련 석사를 마치고 네덜란드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다가 2016년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고, 우연한 계기로 서울시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지원센터 초기 세팅부터 6년간의 재생사업 과정을 거쳐 사업 마무리까지 함께 했어요. 5~6년 가량 서울역 주변 도시재생 활성화 프로젝트에서 건축 총괄을 맡았고, 마지막 근무지로 2021년 5월까지 송정동에서 일했죠.
그러면서 오래된 공간 연구소를 설립했고요. 재생 건축이나 도시 재생 컨설팅 관련된 일들을 사이드 잡처럼 했어요. 그 기간동안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했지만, 종종 공공의 입장에서 도시재생을 하다보니 행정이나 법, 제도의 한계 같은 것들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좀 더 자유롭게, 나만의 방식으로 도시재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공조직인 도시재생센터를 그만두고, 오래된 공간 연구소에 ‘미래’를 집어넣어 ‘오래된 미래 공간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했죠. 건축설계의 업무범위에서 벗어나, 사회적이고 도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 구조도 안정화를 시켜보는 동시에, 착한 브랜드 디벨로퍼로도 역할을 해보자는 포부가 있었어요.
Q. 오래된 공간 연구소에 ‘미래’가 포함되면서 추구하는 역할의 범위가 많이 확장된 느낌이네요.
맞아요. 아무래도 ‘재생’의 관점에서는 미래지향적 사고가 필연적이라 ‘미래’를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최종적으로 ‘오래된 미래 공간 연구소’로 이름을 확정하면서 비전 같은 것들이 좀 더 명확해졌죠. 1유로 프로젝트는 로칼 퓨처스의 첫 번째 기획 프로젝트예요. 방치된 건물을 저희가 건물주에게 임대 받아서 테넌트 선정부터 건축/시공/디자인, 프로그램 및 콘텐츠, 운영 관리 등 A-Z 를 모두 총괄하죠. 일반적인 건축사무소나 부동산 디벨로퍼보다 업무 범위가 훨씬 넓다고 볼 수 있어요.
Q. 그럼 1유로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사실 제가 도시재생센터 퇴직 전 송정동에서 일하면서 추진해보려고 얘기가 진행되고 있던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 당시 공공조직이 가지고 있던 몇 가지 내부 이슈로 인해, 사업이 힘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어요. 그냥 지나가기엔 아까워서 제가 직접 민간 주도 프로젝트로 진행해보려고 재생센터를 그만두고 판을 벌렸고요.
거의 3년을 버려져 방치됐던 건물이니 처음 이 공간을 마주했을 땐 노숙자들도 살고 있고 우범지대 같은 느낌이었어요. 보자마자 네덜란드에서 봤던 로테르담의 ‘발리스블록’ 사례가 떠오르더라고요. 발리스블록은 시가 매입했지만 사실상 방치돼 마약거래상과 마약 중독자, 노숙인들이 살던 곳 공동주택인데, 2004년에 민간 디벨로퍼가 건물을 넘겨받아 주택 1채를 1유로씩 받고 팔았어요. 1년 이내에 직접 리모델링 공사를 마쳐야 하고, 2년 이상의 의무 거주기간이 정해져 있죠. 뜨거운 관심 끝에 최종적으로 40여가구가 집을 수리해 살게 됐고, 이후 자연스럽게 사업이 확산되어 현재 500여 가구가 주택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